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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여민관

훈민정음 경산 칼럼

[칼럼 53] 우리말로 불렀던 식물 이름을 우리 글자로 쓰라

관리자 | 조회 110

 

[칼럼 53]

우리말로 불렀던 식물 이름을 우리 글자로 쓰라

 

1446년 간행된 훈민정음 해례본새로 만든 문자를 만든 원리와 방법, 특성 등을 설명하여 풀이제자해(制字解), ‘스물 석자의 닿소리가 첫소리에 서 어떻게 쓰이는지에 대한 풀이를 한 초성해(初聲解), ‘가운뎃소리가 글자에서 어떤 곳에 어떻게 위치하여 어떻게 음을 내는지에 대한 풀이를 한 중성해(中聲解), ‘끝소리로 쓰이는 8자의 닿소리와 성조에 대한 풀이를 한 종성해(終聲解), ‘첫소리, 가운뎃소리, 끝소리 글자를 어울려 써야 글자를 이루는 원리에 대한 풀이를 한 합자해(合字解)등 다섯 가지 해설로 이루어진 오해(五解) 부분과 새로운 문자를 사용한 예시를 든 용자례(用字例)로 이루어져 있어서 해례라고 한다.

해례 중에서 특히 용자례는 우리 말로 된 이름은 있었으나 이것을 적을 글자가 없어서 어쩔 수 없이 한자로 적어야 했던 우리나라에서 재배하거나 자생하는 식물 이름을 보기로 들면서 삽됴蒼朮菜(창출채)가 됨과 같.”와 같이 식물 이름을 훈민정음으로 적을 수 있다는 사용하는 방법을 예시한 식물명이 총 19종이 확인된다.

 

첫소리[초성]으로 예를 든 식물이 7종으로 ()를 감으로 쓰고, 갈대라고 하는 () ᄀᆞᆯ라고 쓰고, 大豆(대두)(끝소리는 ㆁ)’이라고 쓰고, 띠 풀인 ()라고 쓰고, ()은 파라고 쓰고, 산약이라고 하는 薯藇(서여)는 마, 표주박인 ()드ᄫᅴ라고 쓰면 되고, 가운뎃소리[중성]로 예를 든 식물은 小豆(소두)는 팥인데 ᄑᆞᆺ’이라고 쓰고, 산기슭의 양지쪽에서 자라는 가래나무를 뜻하는 ()ᄀᆞ래라고 쓰고, 볏과의 한해살이풀을 이르는 기장인()라고 쓰고, 버드나무인 ()버들이라고 쓰고, 고욤나무인 ()고욤이라고 쓰고, 삽주나물인 蒼朮菜(창출채)삽됴라고 쓰고, 율무인 薏苡(의이)율믜라고 쓰고, ()라고 쓰는 것이니 예나 지금이나 한가지로 8종이고, 끝소리[종성]로 예를 든 식물은 닥나무인 ()이라고 쓰고, 신나무인 ()이라고 쓰고, 섶나무인 ()이라고 쓰고, 海松(해송)이라고 쓰는 것으로 4종의 식물을 예로 들었다.

 

이처럼 용자례에서 가운뎃소리 ㅛ의 사용법으로 보기로 든 삽됴라는 식물은 도회지에서 낳고 자란 필자에게는 생소한 이름이어서 특별히 눈길을 끈다.

 

왜냐면 그동안 蒼朮菜라고 써왔던 식물을 앞으로는 삽됴라고 쓰면 된다고 풀이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삽됴는 어떤 식물일까 궁금하여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삽됴는 현재에는 삽주로 부르는 국화과 삽주속(Atractylodes) 식물이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삽주는 뭐고 국화과 삽주속은 뭐인가? 이곳저곳을 검색하다가 다음과 같은 무명씨의 수필 한 편과 만난다.

 

어릴 적 산골에서 학교 다니던 시절, 가을걷이 끝나고 나면 어머니는 산에 가서 삽주 뿌리를 캐셨다. 수북하게 쌓여 있는 삽주 뿌리를 겨우내 껍질을 벗겨서 말린 다음 시장에 나가 파셨는데, 이 때 번 돈의 일부는 내 용돈으로 들어왔다. 그때는 삽주가 무엇인지도 몰랐다. 이 삽주 뿌리를 어머니는 산추 뿌리라고 불렀기 때문에 근래까지도 몰랐다. 작년 말 초겨울의 어느 날, 산에서 찍어온 다 말라버린 삽주사진을 식물도감에서 살펴보고 있을 때 어머니가 보시곤 이거 산추뿌리인데하신다. 겨우내 깎아 말리시던 그 산추 뿌리가 삽주 뿌리였던 것이다. 이 삽주는 약초이기도 하지만 봄에 산나물로 먹기로도 좋다고 하신다. 산골동네에서 삽주 뿌리발음이 산추 뿌리로 변해서 사투리로 정착된 것일 터이다. 넉넉하지 않았던 산골 우리집 살림살이에 보탬이 되었던 약초이고, 가끔씩 용돈이 생기게 한 식물이니 귀할 수밖에 없다. 산추뿌리는 생으로 파는 것보다 껍질을 벗겨 말려 파는 것이 돈이 더 된다고 말씀하신 것도 기억난다.”

 

이렇듯 조상 때부터 우리가 불러온 식물 이름을 우리 글자가 없어서 한자로 표기할 수 밖에 없었던 창출채가 비로소 우리 말로 불러온 삽주라는 이름을 새로운 민족의 글자 훈민정음으로 적을 수 있으니 이 얼마나 정겨운가? 이것이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창제하여 하사하신 위대한 정신이다.

나라의 말소리가 중국과 달라서 한자로 표기하는 글과 우리말로 표현하는 것이 서로 통하지 않아서 백성들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적을 수도 없어서 자기의 뜻을 글로 표현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을 불쌍히 여겨서 새로 스물여덟 글자를 만들었으니 어떤 사람이든지 쉽게 익힐 수 있을 것이니 날마다 편하게 사용하라고 창제한 세종의 의도를 증명해 보이면서 글을 맺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