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52] 뿌리 깊은 나무 샘이 깊은 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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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52]
뿌리 깊은 나무 샘이 깊은 물
불휘 기픈 남ᄀᆞᆫ ᄇᆞᄅᆞ매 아니 뮐ᄊᆡ
곶 됴코 여름 하ᄂᆞ니
ᄉᆡ미 기픈 므른 ᄀᆞᄆᆞ래 아니 그츨ᄊᆡ
내히 이러 바ᄅᆞ래 가ᄂᆞ니
한자어라고는 하나도 없는 순수한 우리 토박이말로 된 이 글은 훈민정음과 함께 교과서 및 여러 매체에 자주 나오기 때문에 많은 사람이 읽어 본 적이 있지만, 이 가사가 용비어천가의 노래 중 유일하게 비유와 상징 등 문학적 구성을 갖추었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의외로 많은 것 같아서 이번 글감으로 다뤄 본다.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아니 흔들리므로, 꽃 좋고 열매 많나니
샘이 깊은 물은 가뭄에 아니 그치므로, 내[川]가 되어 바다에 가나니
『용비어천가』는 훈민정음 창제 때문에 이루어진 우리 문학사상 최초의 국문 시가로서, 중화 중심의 역사의식에서 탈피해 악장의 독자적 형식을 개척한 첫 작품으로 세종대왕의 민족에 대한 자부심과 우리의 민족적 우월성을 반영하고 있다.
조선 왕조 건국의 정당성을 선전하고 찬양하는 내용으로서 한문에 젖은 선비들이 처음 우리 글자를 쓰기 시작한 문체로 보기 어려울 정도로 그 시상도 매우 좋은 작품이다.
ᄒᆡ도ᇰ 륙료ᇰ이 ᄂᆞᄅᆞ샤 일마다 텬복이시니
고셔ᇰ이 또ᇰ뿌ᄒᆞ시니
해동의 여섯 용이 날으사, 일마다 천복이시니,
옛 성인들과 부절을 합친 듯 꼭 맞으시니.
제1장에서 해동 여섯 용이 날아 일마다 하늘이 주신 복이니, 이것은 옛 성인들의 고사와 부합한다는 것을 강조한 후에, 서두에 제시한 제2장은 모든 일은 반드시 그렇게 될만한 까닭이 있음을 물과 나무에 비유하여 강조한다.
위와 같이 1445년, 훈민정음이 반포되기 1년 전에 만들어진 『용비어천가』는 훈민정음으로 적힌 글로서는 가장 먼저 된 것인데도 그 문체는 유창하여, 처음 글자를 만들어 쓴 민족의 글이라고 보기 어려울 정도이다.
세종대왕의 직계 선조인 목조(穆祖), 익조(翼祖), 도조(度祖), 환조(桓祖), 태조(太祖), 태종(太宗)에 이르는 여섯 대의 행적을 노래한 서사시 『용비어천가』를 지은 목적은 임금이 된다는 것은 오랜 세월에 걸쳐 피나는 노력을 하여, 덕을 쌓아 하늘의 명을 받아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후세 왕들은 부디 선왕이 창업하실 때의 초심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을 경계하려는 데 있다.
또한 『용비어천가』는 군주가 갖추어야 할 덕목도 말하고 있다. 이를테면 125장에는 경천근민(敬天勤民) 즉, 하늘을 공경하고 백성을 위하여 부지런히 일할 것을 잊지 말 라고 당부하면서 끝을 맺는다.
집현전 부제학이 된 뒤 예조판서, 대사헌, 함길도 관찰사, 평안도 관찰사, 경창부윤, 경기도 관찰사, 예조참판, 이조판서 등을 역임한 권제와 집현전 제학, 형조참판, 형조판서, 지 중추원사, 예문관대제학 예조판서를 거쳐 이조판서 겸 지 춘추관사, 공조판서를 역임한 정인지 그리고 공조참판, 호조 참판, 집현전 부제학, 이조참판, 공조판서, 지 중추원사, 영중추부사를 지낸 안지 와 같이 세종 시대에 최고의 경지에 오른 신하들이 조선 왕조의 시조인 세종 임금의 여섯 대 선조들의 행적을 우리말 노래로 읊고, 거기에 한문의 시를 달아 그 뜻을 풀이한 125장의 노래를 지어 올렸더니, 세종대왕이 기뻐하여 ‘용(임금)이 날아올라 하늘을 다스린다.’는 뜻을 담아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라는 이름을 내렸다는 사실은 《조선왕조실록》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리고 세종 27(1445)년 4월 조에 『용비어천가』 10권을 올리니, 임금은 판 새김을 명하였고 세종 29(1447)년 10월에는 역사적인 사실을 사람들이 다 펴보기가 어려운 일이므로, 박팽년 · 강희안 · 신숙주 · 이현로 · 성삼문 · 이개 · 신영손 등에게 주해를 붙이게 하여 역사적 사실을 기록한 글을 10권의 책으로 완성하게 한 후 『용비어천가』 550질을 신하들에게 내렸다고 적혀 있다.
훈민정음이 얼마나 우리말을 잘 표현할 수 있는지 시험하기 위해 조선 왕조를 찬양하는 내용을 빌려 써 본 『용비어천가』 는 오늘날 방송이나 신문에서 지나치게 정권을 옹호하는 홍보물이 나타나면 “또 용비어천가 쓴다.”라고 하듯이 정치권에서 정권 찬양 물을 『용비어천가』에 빗대는 것을 만약 세종대왕이 듣거나 보게 된다면 어떤 생각을 할지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