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07]
훈민정음의 생일을 아십니까?
모든 존재는 자기 쓸모를 가지고 태어나는데, 세상에 태어난 날 또는 태어난 날을 기념하는 해마다의 그날을 생일이라고 한다는 뜻이다. 이것은 시간을 간직할 때 부여되는 특별한 의미이다. 그러나 인간과 사건은 시간을 달리 체험한다. 인간은 시간을 간직할 줄 모른다. 간직할 줄 모르기에 그 순간으로 돌아갈 수가 없다. 이에 비하여 사건은 시간을 간직함으로써 이름으로 존재한다. 시간에 포위되거나, 시간에 휩쓸리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머금고 있다. 그것은 정지해 있는 것 같지만 호흡하며 살아 있는 것이다.
세종대왕 사후에 집현전 8 학사 중 최항, 박팽년, 성삼문, 신숙주를 포함한 총 58명으로 구성된 세종실록 편수 작업(1452~1454)의 총감독자였던 정인지는 세종 25년 계해년(1443년) 음력 12월 30일(경술일)의 실록에 다음과 같이 기록하여 시간을 머금고 있다.
是月上親制諺文二十八字其字倣古篆分爲初中終聲合之然後乃成字凡于文字及本國俚語皆可得而書字雖簡要轉換無窮是謂訓民正音(시월상친제언문이십팔자기자방고전분위초중종성합지연후내성자범우문자급본국리어개가득이서자수간요전환무궁시위훈민정음)이다. 이 실록의 문장은 띄어쓰기도 없고, 마침표 같은 문장부호 하나 없는 한자 57자로 기록된 한문이다.
이것을 소위 한글세대를 위하여 풀이한다면, “이달에 임금이 친히 언문 28자를 지었는데, 그 글자가 옛 전자를 모방하고, 초성 · 중성 · 종성으로 나누어 합한 연후에야 글자를 이루었다. 무릇 문자에 관한 것과 이어(俚語)에 관한 것을 모두 쓸 수 있고, 글자는 비록 간단하고, 요약하지마는 전환하는 것이 무궁하니, 이것을 훈민정음이라고 일렀다.”라는 뜻이 되는데, 번역문 속에 들어 있는 쉼표나 가운뎃점, 마침표를 빼면 언문 114자로 한문보다는 정확히 두 배로 글자 수가 많아진다.
이렇게 짧은 문장 속에서 시간이 머금고 있는 몇 가지 중요한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첫째, 누구의 도움 없이 임금이 친히 창제했다는 것이고, 둘째, 언문 28자라는 것이며, 셋째, 옛 전자를 모방하였고, 넷째, 초성·중성·종성으로 나누어 합한 연후에야 글자를 이루었으며, 다섯째, 문자에 관한 것이든 항간에 떠도는 속된 말이 든 모두 쓸 수 있고, 여섯째, 글자를 간단하고, 요약하지만 전환하는 것이 무궁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일곱 번째로 이것을 훈민정음이라고 하였다는 것은 바로 이달에 임금이 친히 창제한 28자를 계해년 음력 12월 30일에 출생신고를 하면서 세종대왕이 각고의 노력 끝에 창제한 문자의 이름을 ‘훈민정음’이라고 정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하필이면 정인지는 한 해의 마지막 날 이 사건을 기록하였을까?
음력 12월 30일은 섣달 그믐날로 한자로는 제석(除夕) 혹은 제야(除夜)라고도 한다.
이날은 한 해의 마지막 날이므로 집 안 구석구석에 등불을 밝히고 새벽녘에 닭이 울 때까지 잠을 자지 않고 수세(守歲)를 하면서 새해를 맞이한다.
守歲는 지나간 시간을 반성하고 새해를 설계하는 통과 의례로 마지막 날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라는 생각에서 음력 섣달 그믐날 밤에 잠을 자면 눈썹이 센다는 정겨운 풍습도 비롯되었던 것이다.
섣달은 한 해를 다 보내면서 새해의 설을 맞이하기 위한 설윗달 즉 서웃달의 준말이고 ‘그믐’은 순우리말 ‘그믈다’의 명사형에서 나온 말로 저문다는 뜻인데 만월의 보름달이 날마다 줄어들어 눈썹같이 가늘게 되다가 이윽고 모두 소진하여 없어진다는 뜻이므로, 섣달그믐을 빨리 제거해야 새해가 오고 입춘이 오기 때문에 어리석은 백성들을 어엿비 여겨 새로 만든 훈민정음을 새해 첫날부터 쓰게 하고 싶었기 때문일 것이라고 생각해본다.
다시 말해 훈민정음 28자가 최초로 세상 밖으로 나온 창제에 대해 세종실록에는 1443년 음력 12월 30일자에 기록하면서 ‘이 달에~’라고 시작하고 있다. 그래서 ‘이 달’의 중간 날짜인 1443년 음력 12월 15일을 한국천문연구원에서 제공하는 음양력 변환계산을 이용하여 그레고리 양력으로 환산하면 1444년 1월 13일이라는 날짜가 나오기 때문에 훈민정음의 생일날로 기념하는 것을 제안해 본다.
왜냐하면, 집현전 대제학이었던 정인지도 1446년 9월에 쓴 ‘훈민정음 해설서’인《훈민정음 해례본》서문에서 “계해년 겨울에 우리 전하께서 정음 28자를 창제하시고, (신하들에게) 그 용례와 의미들을 간략히 들어 보여주시면서, 명칭을 훈민정음이라 하였다. (癸亥冬我殿下創制正音二十八字略揭例義以示之名曰訓民正音)”라고 훈민정음 창제 사실을 불가역적으로 명확하게 기술하고 있기 때문이다.